이용관 대표 기고 <이 스타트업에 나는 왜 투자했나> 02 씨드로닉스

2020-04-17

* 본 기고문은 조선일보 <이 스타트업에 나는 왜 투자했나> 시리즈에 연재한 글로, 조선일보의 동의 하에 전재함을 밝힙니다.

 

씨드로닉스 박별터 대표(좌)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투자육성본부 황희철 이사(우)

 

씨드로닉스 박별터 대표

 

스타트업이 뭔가를 만들면 전통 산업과의 갈등을 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안전한 해양 산업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선박 접안보조시스템(AVISS, around view intelligence system for ship)을 만들어 기존 선박 산업 종사자들에게도 환영받으며 성장하는 스타트업이 있다. 우리가 2016년도에 팀의 역량만 보고 우선 소액 투자(우리는 내부적으로 이를 ‘탤런트 투자’라고 부른다.)하고, 2017년에 시드 투자한 씨드로닉스(대표 박별터)다.

 

2015년도에 처음 만났을 때는 대표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별터’라니 왠지 반짝반짝한 느낌이 아닌가. 실제로 그랬다. 당시 네 명이었던 씨드로닉스는 대학원에서 어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해파리를 제거하는 드론과 무인 선박을 만들었다.

 

쉽고 재미있게 들리지만 많은 기술이 필요했다. 드론의 정찰 기술, 찍은 이미지를 분석하는 기술, 배들이 장애물을 피해 목적지까지 가는 기술, 항법 기술 등이다. 사업성은 부족해 보였지만 팀이 가진 기술 전문성과 지식의 깊이가 좋았다.

 

여느 팀이 그렇듯 처음에는 이 팀도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한참 멀어보이는’ 아이템을 하고싶어 했다. 쉽게 설명하면 아직 인증과 상용화가 진행되지 않은 미래형 운송수단의 자율 운항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시장이 한참 후에나 생길 것 같아서 내부에서도 투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전문성과 의견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좋다는 데에는 만장일치였다. 그래서 탤런트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새로운 것을 하겠다는 자신감과 함께 ‘우리가 하고자 하는 분야의 시장이 빨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현실 인식도 뛰어났다. 아이템을 잘 잡으면 뭐라도 잘 할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소액의 탤런트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이후 인공지능 기반 USV(Unmanned-surface vehicle, 무인 선박)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꿨다. 앞으로는 배가 무인화될 것 같은데, 해양 환경의 경우 파도나 안개 같은 요소들 때문에 육지가 대상인 무인기와는 다른 기술력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이 부분에는 아직 학습된 데이터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승산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달라진 아이템에 우리는 비로소 씨드 투자를 했다.

 

빠른 시간안에 기술이 완성되었음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후속 투자가 쉽게 이어지지 못 했다. 박사 네 명이 시작한 팀이고, 도전적이고, 바다라는 험한 환경에서 독보적인 데이터를 보유한 USV라는 아이템 자체가 멋지니까 많은 벤처캐피탈에서 관심을 가졌지만 그뿐이었다. 무인 선박이 ‘돈을 벌’ 때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시장의 판단이었다.

 

이때, 씨드로닉스 담당이었던 황희철 이사가 큰 도움을 줬다. 황 이사는 국내 최초로 초소형 무인비행로봇을 개발해 회사를 매각한 경험을 가진 창업가 출신이다. 큰 틀에서 같은 기술이 많아 직접 도움 줄 부분이 많았다. 박 대표와 함께 시장을 넓게 조사하고, 기술을 세분화하기 시작했다. 무인 선박이라는 목표를 향하는 중간 단계에서 실현가능한 아이템들을 파악했다. 다양한 시장 관계자를 만났고, 그러다 선박의 집합소인 항만에 집중하게 됐다.

 

선박이 항만에 주차하는 과정을 ‘접안’ 이라고 한다. 종이배를 손으로 밀어 원하는 위치에 접안시키는 것도 어려운데, 큰 배는 말할 것도 없다. 도선사와 예인선은 자동차보다 몇천 배 큰 선박의 접안을 성공시킨다. 하지만 기술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가까운 이 작업은 변수가 많고, 그만큼 리스크도 적지 않다.

 

씨드로닉스가 무인 선박을 만들고 싶어서 쌓아오던 제어, 센싱, 분석 등 기술적 역량이라면 도선사들과 항만 관계자들이 더욱 안전하게 접안하도록 도와줄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었다. 장애물을 피하는 것이 자율 운항, 무인 선박의 핵심이었던 만큼 선박 접안에는 잘 들어맞았다.

 

선박과 부두 간 거리, 가까워지는 속도, 장애물들을 파악해 모바일로 정보를 줄 수 있으니 도선사와 항만 관계자들 모두 반가워 할 만한 상생, 협업이 될 수 있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우리가 여길 다 혁신해보겠다’고 나설 수도 있었고, 그랬다면 자칫 갈등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잘 설계했다.

 

좋은 시점에 조선업을 비롯한 기존의 전통 산업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스마트화에 눈을 뜨게 된 것도 한 몫 했다. 울산항만공사에서 가장 먼저 나서 씨드로닉스에 테스트베드를 제공했고, 세계 항만관계자와 해외 업체를 만날 수 있는 박람회 참가도 지원해줬다. 그 과정에서 황 이사가 왕복 6시간을 경남 지역까지 함께 다니며 B2B 비즈니스 노하우도 많이 전수하기도 했다. 이후 계약들이 성사되고 숫자가 찍히자 벤처캐피탈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해 지난 해 후속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씨드로닉스가 여러 번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또한 많이 배웠다. 큰 목표와 그림을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선 시장에 진입하고 시장에서 얻은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형태의 비즈니스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씨드로닉스는 지난해 유치한 후속 투자를 바탕으로 스케일업에 매진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불모지인 해양산업에서 이렇게 쌓아가다보면 언젠간 씨드로닉스의 로고가 박힌, 그들이 그리던 무인 선박을 만들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원문: [Tech & BIZ] “창업자 이름은 박별터, 그 이름에 반해 첫 투자… 별빛 따라 항해하는 스타트업은 오늘도 성장 중”